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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 판도라의 상자(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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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르덴 2023. 6. 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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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1929)
Die Buchse Der Pandora, Pandora's Box

감독 게오르크 빌헬름 팝스트
각본 게오르크 빌헬름 팝스트
출연 루이스 브룩스
촬영 Günther Krampf
음악 윌리엄 P. 페리
개봉일 1929년 1월 30일
시간 100~152분 (미국)/133분 (감독 컷)
국가 미국

줄거리 신문사 사장인 쇤 박사는 정부인 룰루에게 호화로운 아파트를 마련해준 한편, 내무부 장관의 딸과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박사의 내연관계를 알게 된 장관은 결혼을 허락하지 않고, 욕심 많고 어린애 같은 룰루 또한 장관의 딸을 포기하고 자신과 결혼하라고 조른다. 결국 쇤 박사는 어쩔 수 없이 룰루와 결혼하기로 하는데, 결혼식 당일 그는 자신의 아들을 포함한 모든 하객들이 룰루와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격분한 박사는 권총을 휘두르며 하객들을 쫓아낸 후 룰루에게 동반자살을 권한다. 그러나 룰루는 박사를 쏜 후 프랑스를 거쳐 런던까지 도망가는데...

《판도라의 상자》(Die Buchse der Pandora, Pandora's Box)는 게오르크 빌헬름 팝스트(Georg Wilhelm Pabst) 감독이 1929년에 제작한 독일 무성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프랑츠 크라카워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여성 주인공 루시(Lulu)를 중심으로 사랑과 타락, 운명의 주제를 다룹니다.

영화는 루시,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남성들, 그리고 그들의 파괴적인 욕망들을 그립니다. 루시는 아름다운 여인으로서 매혹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녀는 많은 남성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과 성욕은 파괴와 죽음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하며, 그녀의 삶은 점점 타락해갑니다.

영화는 사회적 타락과 성욕, 사랑과 사망의 테마를 다루는데, 당시 독일 사회에서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성욕과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의 위치를 탐구하며, 그 당시 독일 사회에서는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팝스트 감독의 연출과 카를 화이스(Karl Freund)의 사진감독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팝스트는 연출을 통해 주인공 루시의 내면과 갈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으며, 화이스는 조명과 그림자를 통해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구현했습니다. 또한, 루이즈 브룩스(Louise Brooks)의 탁월한 연기도 이 작품의 강점 중 하나로 꼽힙니다.

영화사적으로는 《판도라의 상자》는 독일 무성영화 운동의 정점을 나타내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작품은 성공적인 영화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여성의 타락과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의 위치에 대한 표현은 당시의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또한, 팝스트의 연출과 화이스의 사진감독은 기술적인 성취로 평가받으며, 이후의 영화 제작에도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게오르크 빌헬름 팝스트(Georg Wilhelm Pabst) 감독은?

게오르크 빌헬름 팝스트(Georg Wilhelm Pabst)는 20세기 초기에 활동한 독일의 감독으로, 무성영화 시기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입니다. 1885년 8월 25일 오스트리아의 란츠하이데(Linz)에서 태어났으며, 1930년대까지 주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작품을 연출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사회적 문제와 성향, 인간 본성 등을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실명감을 담은 연출과 세련된 시네마토그래피로 극찬받았습니다.

게오르크 팝스트는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다루었으며, 그의 작품은 시대적으로 중요하고 독특한 예술적 비전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판도라의 상자"(1929), "무능력한 사람들의 밤" (1931), "마인즈" (1931), "흐르는 강" (1936), "부패의 도시" (1938) 등이 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불륜과 타락, 성욕, 사랑, 사망 등을 다루며, 여성 주인공의 사회적 타락과 성욕을 통해 당시 독일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연출과 조명, 성악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었으며, 팝스트의 시대적 영향력을 입증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게오르크 팝스트는 당시의 독일 무성영화 운동을 주도하고 지원하였으며, 정치적·사회적으로도 활발하게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나치의 성장과 권력 확장에 대한 우려로 인해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다양한 작품을 연출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그의 영화 경력은 두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인해 중단되었습니다.

게오르크 팝스트는 독일의 무성영화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감독으로, 그의 작품은 현대 영화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연출 스타일과 예술적인 비전은 여러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작품은 여전히 극찬받고 있습니다. 1967년 5월 29일, 파리에서 82세로 사망한 이후에도 팝스트의 작품은 영화사에서 소중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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